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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에 관하여/성경자료 모음

성경에 관한 ? 어느 블로그의 의견

외경 및 사해문서을 보며 | 이단의 공간 2007.07.06 04:29 따식아 밥묵자
방명록에 글을 남겼는데 지금 일부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종말론의 허구에 대해서도 님의 전문적인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구약을 인용해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해 놓은 신약을 보고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다. 그러나 구약을 쓰고, 편집하고, 대대로 지켜 내려와서 이 세상 어느 민족보다 더 잘 이해할 유대인들은 예수가 결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아니라고 한다.


세계적인 석학 토인비는 이런 말을 했다.


"기독교인들이 율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살펴본 적이 있는 유대인이라면,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예언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무모하게 구약의 명백한 원뜻을 변형시켰는가 하는 것을 알고 놀라움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 토인비·어반 공저, 최혁순 譯 <미래에의 좌표> p13, 삼중당 ]


마태복음 기자가 이사야서 7장 14절의 내용을 원용해 쓴 것으로 유명한 마태오 복음1장 22~23절을 보자.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이 말은 불행히도 히브리어판 이사야서 7장 14절에는 '처녀'라는 단어가 아니라

'알마아'(alma)로 되어 있으며 '알마아'는 처녀가 아니라 '젊은 여자'를 가르키는 말이다. '처녀'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베툴라아'이다.


다른 희랍어 번역본들(아퀼라, 심마커스, 데오도숀 역본)은 모두 희랍어로

'네아니스'(히브리어의 '알마아'에 해당)라고 되어 있고 오직 셉츄아진트만이

'파르테노스'(히브리어의 '베툴라아'에 해당)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사야서의 '알마아'는 성교를 경험하지 않은 예수의 엄마가 아니라 아하스왕이 새로이 맞이한 젊은 왕후로 보아야 마땅하다

류형기 편역 <성서주해> Ⅱ 423~424, 한국기독교문화원, 1971 ]



헤롯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다 죽였을 때 마태는

그 사건이 구약에서 예언된 것이라고 했다.



+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하는구나!'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마태 2:18)


그러나 인용되었다는 곳을 구약에서 찾아보면 그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거두어라, 애태운 보람이 있어 자식들이 적국에서 돌아오리라.(예레미아 31:16)


그리고 다음의 말씀을 보자.


+ 그러다가 그는 다시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레아 지방으로 가서 나자렛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그를 나자렛 사람이라 부르리라.'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마태 2:22~23]



신약이 인용한 구약은 100% 자의적 인용일 뿐 유대신학자들은 단 한명도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아전인수로 비웃는 것들이다.

구약에 메시아가 나자렛이란 동네에서 살 것이라고 예언한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봐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자렛'이란 단어조차 없다.

(예수 당시에 나사렛이란 동네는 없었다. 세포리스를 나사렛으로 오인했다는 사실이 고고학 발굴로 증명되었다.)

그래서 신약에 보면, 다른 예언은 어디서 인용했다고 조그만 글씨로 주(註)를 달아 놓았지만(물론 대부분은 엉터리임), 이 곳에는 구약 어디에서 인용했다는 표시조차 없다.

(참고;나사렛이란 동네는 순례자들을 위해 CE800년에 만들어진 지명이다. 나사렛사람이니 나사렛이니 하는 말을 쓴 것은 신약이란 서간문을 쓴 어느 유대인이 나사렛이란 마을이 생긴 이후에 기록했거나 로마가 첨삭했다는 증거이다.)


이 외에도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구약에서 예언되었다고 하면서 인용하고 해석하는 것들이 수십, 수백 개가 되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 터무니없는 억지이다.

[ 하원 <한쪽 뺨맞고 성질내신 예수님> 중에서 ]



▣ 예수는 실존 인물인가? 신화 속의 인물인가?

예수는 동시대인들이나 당대의 역사가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언급할 가치가 없는

인물로 평가된 것 같다. 현재 빌라도나 헤롯등 당대의 걸출한 인물들의 생애와 관련된 자료들은

복수적 자료에 기록되어 예수에 비해 풍부히 남아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시대 역사 학자들의 저서에 예수의 이름이 기록된 문서는 전혀 없다.


방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역사적 실체를 입증 할 만한 그 어떠한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서가 발굴된 적이 전혀 없다.

예수라는 인물이 당대에 존재했다면 이렇게까지 기록이나 유물이 전무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당시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인물이요 헤롯왕가와 유대 제사장들의 골치거리요 민란 혐의자요 로마의 형을 집행받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점의 기록이 없다는 것이 기적인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습관적으로 유일한 증거라고 생각하는 4복음서를 증거물로 제시할 것이다.

물론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이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4 복음서가 예수의 가르침을 포함하고는 있으나, 역사적 행적에 대한 기록물로 보기에는 많은 논란의 소지가 풍성하게 안고 있다.



최근의 방대한 연구 실적들은 크게

(1)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신화설) 주장하는 류와

(2) 예수의 실체는 인정하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예수와는 상치된

예수를 재구성해 내는 류로(재구성파) 구분 할 수 있다.


재구성파 안에서도 의견은 분분하여, 여러 모습의 예수를 그려내고 있다.

성경 구절이 진짜로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실제로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학회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 발표하여 물의(?)를 빚는 예수학회(Jesus Seminar)가 이 재구성파의 대표 격이다.


어쩌면 "신성 모독"이 될 수도 있는 학설들이 자유로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을 우리가 무시 할 수만 없는 것은 이들이 양심적인 학자들이며, 왜곡된 기복 신앙과 무지한 성경 지식에서 기인하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부작용에, 최소한도 예수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예수의 기록이 전해지는 책들 중에는 타시투스Tacitus(AD 55~120)라는 로마의 역사가가 쓴 책에서 짤막히 예수라는 인물이 십자가 처형에 처해졌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예수의 처형이 있은 후 약 80년 정도 지난 AD 112 년 경에 기록된 것이다.

이미 예수 신화가 로마에도 널리 보급된 후의 일이므로, 그가 시중의 기독교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었을 확률이 매우 크다.

더구나 동시대 다른 역사가들은 Tacitus를 기독교도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 하나 AD93년에 출간된 죠세푸스(AD37년 출생)의 "유태인 연대기" (Jewish Antiquities)에도 예수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두 군데("증언" 구절과 "형제"구절) 있으나, 학자들간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거의 모든 학자들이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위조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확실히 동의하고 있으며, 신화파에서는 전체가 다 위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1. 먼저 께름직 한 것은 "연대기"의 복사 본들이 전부 기독교인들의 관리하에 전수 되었다는 것이다.

2. 초대 교부들과 기독교 변증가들은 왜 "조세푸스"의 저술을 인용하지 않았는가?

초기 교부들은 한 한사람도 죠세푸스를 인용하지 않았다.
초대 기독도들은 그들의 교리에 대하여 각 종파로 부터 많은 도전을 받았다.

예수의 실존과 그의 놀라운 기적들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받았고, 이러한 과정은 본인들의 저술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좋은 증거물을 제시하지 않았다.


"증언"구절은 324 년이 되어서야 "유세비우스" 추기경에 의해 처음으로 인용되었다.

"형제"구절은 그전에 "오리겐"에 의해 230-250년 사이에 와서야 처음으로 인용되었다.


연대기가 발간된 게 93년경이니까 거의 140-250년이 흐른 셈이다.


그사이에 기독교 변증가들은 연대기를 읽지 않았을까?

연대기는 초대 기독교도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그들은 열광적으로 그 책을 읽었고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도, 무수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인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읽었던 사본에는 문제의 구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끼워 넣은 것이다.


"이백년이 넘도록, "조세푸스"의 저술을 잘 알고 있던 초대 교부들은 상기의 증언 귀절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에 동 구절이 "조세푸스"의 저술에 있었다면 그들은 도전자들과의 논쟁에서 그것을 여우보다 재빨리 인용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동 구절은 그 저술에 없었다.

"조세푸스"의 책을 읽어 본 "오리겐"도 "조세푸스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고 서술했을 뿐이다.

동 구절은 기독교 최초 역사가 "유세비우스" 추기경에 의해 언급되었다.

동 구절은 그의 조작임에 틀림없다.

"유세비우스"는 신앙의 명분 아래 문서 변조를 지원하였고 "조세푸스"외의 여러 저술가들의 책들도 변조 시켰다"

- 마샬 거빈 (Marshall J. Gauvin).


3. "오리겐"은 "형제"구절은 읽었는데 "증언"구절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따라서 "증언" 구절은 그 후에 첨가된 것이 확실하다.


4. "조세푸스"의 책 "유태인 전쟁"은 "안티오쿠스"의 예루살렘 점령부터 AD 70 년의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내용을 "유태인 연대기" 책에서 그대로 복사하고 있다.

"빌라도"가 군중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 등 다른 부분들은 거의 동일하게 서술되었는데

"유태인 전쟁"에서는 유독 상기의 예수 인용구들만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예수가 실존 인물이라면 이 부분에서만은 어떤 형태로든 언급되어야 맞는데도 말이다.


5. "유세비우스" 추기경이 처음으로 인용한 "증언"은 "조셉 웰레스"에 의하면 본인 스스로의 유세비우스 추기경 당대에는 왕권 확립을 위해서 이교도가 대대적으로 소탕 멸절되고 대대적으로 기독교 문서들이 조작되는 조작 대 유행기였다.

"조셉 웰레스"는 많은 연구 끝에 당시 교부들 사이에 유행하던 문서 변조의 행태를 캐어 낸 인물이다.

그는 문서 변조의 대표자로 "유세비우스" 추기경을 꼽았다.


유세비우스 본인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의 구세주에 관하여, 내가 이미 생산(?) 해낸 이 증거들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유태인 "조세푸스"를 여분의 증인으로 이용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 (Eusebius, Evamgelical Demonstration, Book III. p.124)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솔직한 고백인 셈이다.

이래서 "조셉 윌레스"는, 기독교의 문서변조를 증명하기가 "예상 밖으로 쉬웠다"고 하였다.

"문서변조의 증거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교부들 자신의 서술과 구교의 교회사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이었다.

[ 인터넷 <예수를 찾아서>중에서 ]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가 실존인물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역사기록은 전혀 없으며, 기독교인들이 내세우는 타시투스, 수에토니우스, 플리니, 탈루스 조세푸스 등의 기록들은 예수의 실존을 증명하는 사실의 기록이라고 보기 어렵거나 위조된 것이라고 의심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왜 그렇게 기록이 없는 걸까?


그의 일생 중 13세 이후 31세까지의 공백기도 설명이 거의 어렵다.

신약에 보이듯 그의 생전 그렇게 많은 추종자들과 적들이 있었고 사후에도 동시대의 동향인들

(심지어 부모까지)이 그렇게 많이 살아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개인에 대한 관심이 그토록 없을 수 있었을까? 이것은 기적이다.아니면 그들은 핍박 때문에 예수라는 이름을 기록할 수 없었던 것일까? 로마인들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신학자를 포함)은 사상이나 종교에 매우 관대했던 로마의 법률 등을 고려하면 그 시대, 그 곳에서 기록도 못할 정도의 핍박은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더 비중을 둔다.


기독교인들은 단군을 신화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보다 무려 2,000 뒤에 탄생하고서도 학자들 사이에서 신화로 간주될 정도면 정말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 아닌가?
먼저 훌륭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성서 자체가 허구라면 거기에 기반을 둔 종말론 또한 허구가 되겠지요. 그런데 요즘 일부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종말론의 구체적인 실체와 그 허구성을 알고 싶습니다. 예를들면 그들은 에스겔 36장과 로마서 11장을 근거로 지금 우리의 역사가 성경이 예언한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비판 능력이 없는 자들은 그것에 세뇌되어 실제로 맹신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세계에 흩어져 핍박받던   디아스포라가 돌아오는 것이 예언의 성취랍니다. 그리고 디아스포라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도록 후원하고 돕는 단체들도 있답니다. 그것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사탄이구요. 사탄들이니 맘대로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을 명분도 되겠군요. 지금의 세계화 과정 또한 이미 예언된 대로 가고 있답니다. 예언대로라면 얼마 있으면 독제자가 드장 한다는군요. 혹시 이러한 종말론의 실체와 허구성을 아신다면 이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님의 글은 잘 읽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받게 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 [미가 4장 6~7절]
위의 '개역한글판'의 뜻이 애매모호해서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올린다.
"그 날이 오면, 나는 절름발이들을 모아 오리라. 야훼의 말씀이다. 흩어졌던 것들을 모아 들이리라. 적지않이 고생을 시켰지만, 그 절름발이들, 비틀거리는 것들을 씨앗으로 남겨 강대국을 만들리라. 이제부터 영원토록 이 야훼가 시온산에서 다스리리라." [미가 4장 6~7절 / 공동번역판]

유대민족을 여호와가 강대국(강한나라)으로 만들겠다는 이 말은 요한 계시록에서 말하는 세계종말과 거리가 멀다. 스가랴 14장의 종말 역시 보편적인 종말관과는 달랐다.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중략)......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 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스가랴 14장 12~19절]

역시 여기에서도 유대민족을 핍박하는 자들을 여호와가 직접 심판하고 이스라엘 이라는 국가가 존귀해 진다는 내용이다. 이집트를 비롯해서 외국인 들에게 유대율법을 지키게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유대국가를 강성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신자를 영원한 지옥에 떨어뜨려 고통을 준다는 요한계시록의 예언과는 차이가 난다. 또한 이런 구약의 예언에는 메시아 적인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여호와가 직접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사야서에 이르러서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인 매우 강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 대 이방인'이란 도식(圖式)도 조로아스터교의 보편적 사상에 영향을 받아서 차츰 '의인과 죄인'의 구조로 약간 바뀌어지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메시아적 존재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호와가 직접 심판을 내린다.
그러던 것이 신구약의 중간기에 들어서는 인류종말, 구세주 도래, 부활등의 영향이 뚜렷하게 등장한다. 문제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신구약의 중간기에 해당되는 문서를 외경으로 버렸기 때문에 종교가 진화해 가는 모습을 느낄수 없는것이다.

지금, 현재에도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경의 무오성과, 종말론에 심취하게 되는 광신자가 찾게 되는 책이 묵시문학이다. 난해한 상징들로 가득찬 묵시문학을 함부로 해석해서, 오늘날의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필자는 묵시문학에 대해, 영적인 능력이 없는 평범한 자들이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위조한 해로운 문서라고 생각한다. 구약이 예언서들이 그렇다. 유명한 옛 선지자의 이름을 가장하여 지나간 사건을 미래의 예언인 것 처럼 써내려 갔다. 그런 예언서들이 유대교의 경전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자, 그 이후의 사건들에 대해선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전혀 예언하지 못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은 조금 특별하다.
지나간 사건을 예언인것 처럼 위조했던 구약의 예언서들과 달리, 요한계시록은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글로써 남겨 놓았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은 정말로 미래를 예언했는가?
만일 필자에게 미래에 대한 환상이 보여진다면 어떻게 기록을 했을까? 아마도 미래의 사람들은 금속으로 된 말을 타고 다니고(오토바이), 금속으로 된 새를 타고 날아 다니고(비행기), 말이 끌지 않아도 자동으로 굴러다니는 수레를 타고 다니고(자동차), 달에 가서 깃발을 꼽고, 멀리 떨어져서도 작은 상자를 통해 이야기를 할수 있다(전화기)고 예언 했을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보면 그런 예언들이 등장한다. 물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조작시비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아무리 상징적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미래의 역사 전개에 대한 예언도 없다. 붉은말을 탄 사람이 전쟁을 일으키고, 검은말을 탄 사람이 기근을 불러온다는 둥의 뜬구름잡는 예언일 뿐이다. 전쟁과 기근은 어느 시기에나 있었다. 이런 예언은 어느 시기의 누구든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속의 상징 역시 해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구약의 예언서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요한계시록의 상징을 알수가 있다. 요한계시록 속의 상징은 구약의 예언서 속의 상징들의 총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상징의 정체를 파헤치고 보면 별다른 내용도 없다.
지금도 묵시문학의 내용을 멋대로 해석하여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쉬지않고 등장한다. 다미 선교회의 1992년 종말론 파동은 우리에게 악몽과도 같다. 그러나 그런자 들을 키워낸 것은 기독교이다. 헛되기 그지없는 묵시문학을 정경에 포함시키고, 성경의 무오성을 신자들에게 쇄뇌 시켰으며, 요한 계시록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기근, 자연재해, 경제공황등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때문에 중세시대부터 종말을 주장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000년 왕국 때문에, 예수가 이땅에 온지 1000경이 된, AD 999년에는 유럽각지에서 군중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며 탐관오리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AD 1000년이 되도록 종말이 오지않자, 다시 예수부활후 1000년으로 종말이 수정되었고 예루살렘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1033년이 되어도 종말이 오지않자 종말은 1186년으로 수정 되었으며 켄터베리 대주교는 종말에 대비해 영국전역에 3일금식령을 내리기도 했다.
1254년에는 프레드릭 황제가 인노선트 4세 교황의 라틴 이름의 합이 666임을 들어 그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적 그리스도 임을 주장 하기도 했다. 신교와 구교가 분리 되서 싸우고 있을 때에는 같은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666이라며 비방했다.
기독교가 자리잡았던 유럽의 역사속에서 종말을 주장했던 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수도없이 많았다. 주로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을 그 당시의 현실에 적응 시키거나, 전쟁이나 전염병, 자연재해등이 닥쳐 살기가 힘들어지면 종말론이 고개들 들고 일어섰다.

종말론자들은 항상 묵시문학을 그 시대에 반영 하려고 한다.
예를들어 조용기 목사는 그의 저서 요한계시록강해(1976) P.152~154에서 계시록 6장의 붉은말이 공산주의라고 주장한적이 있었다. 책이 출판된 시기는 70년대 냉전의 시기, 그러나 공산주의는 현재 몰락했다.
요한계시록의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상징적 해석으로 사탄의 재림으로 해석한다.(이것이 정통적인 분석이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때는 전염병이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고 주장한다. 혜성이 지구 근처를 지나갈때는 혜성이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고 주장한다.(중세에는 혜성이 지나가면 흉년이 온다는 속설이 있었다.) 과학문명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 핵폭탄을 의미 한다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닌가?

요한계시록을 현재에 대입시키는 종말론자들은 계시록의 나오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재앙을 로마를 멸망시킨 야만족이나 이슬람교의 세력증강으로 해석한 적도 있었으며, 천사가 요한에게 준 작은 책을 루터나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개신교 광신자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세력을 로마 카톨릭으로 보고, 짐승의 멸망을 로마 카톨릭의 멸망으로 해석 하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종말론자 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날의 시대는 도덕적으로 타락했읍니다. 종말이 다가 왔읍니다.회개해야합니다"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많다. 무슨 배짱으로 그런말을 함부로 하는것인가? 예수는 종말의 시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장 36절, 마가복음 13장 32절]

예수도 모른다는 종말의 때를 자신이 알기라도 한단 말인가? 자기 자신이 예수에 버금가는 존재라고 착각에 빠진 것이 아닌가!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시 시간이 나시면 잘 준비하셔서 댓글이 아닌 본문 글에서 종말론의 역사와 실체를 체계적으로 기술하실 의향은 없는지요.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한다면 광신자들이 함부로 날뛰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제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종말론의 이론을 그대로 믿고 따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성이 마비된 상태죠. 이들을 구제하였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밤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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