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ansoon 2006. 10. 25. 15:47
뉴스 블로그] 83세에 상장한 회장과의 설렁탕 점심


[조선일보 조의준기자]

지난 17일 삼정펄프의 전재준 회장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 회장은 바로 전날 조선경제 B2면에 ‘짠돌이 경영… 83세에 이룬 상장(上場)의 꿈’이란 제목으로 보도된 화제의 원로 기업인이죠.

전화 내용은 점심을 함께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23일 약속 시간에 맞춰 서울 혜화동 삼정펄프 본사로 찾아갔습니다. 아들인 전성오(46) 사장과 머리가 회장님만큼 하얀 양홍렬 고문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자~ 우리 밥 먹으러 가죠.” 그때 전 사장이 갑자기 양복 윗도리를 걸치고 먼저 문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선약이 있으신가 보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전 사장은 자신의 구형 SM5를 몰고 ‘운전사’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매출 860억원짜리 회사의 사장이 말입니다.

“아이~ 뭐, 제가 운전하면 되죠.” 그래서 도착한 곳은 설렁탕 집이었습니다. 5500원짜리 설렁탕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곤 살짝 경리부장에게 물어봤습니다.

“판공비도 없다면서 월급은 많이 주시겠죠?”

회장 월급이 400만원, 사장 월급이 350만원이었습니다. 그것도 지난 7월 20만원을 올려서 그렇답니다. 시중은행의 차장급도 안 되는 월급입니다. 대주주지만 최근 3년 동안은 배당을 받은 적도 없다고 하더군요. 이런 분이 350억원 상당의 땅을 사회에 기부했다니….

회사는 핵 폭탄이 터져도 망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은행 빚은 전혀 없고, 대신 현금만 약 250억원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60억원짜리 기계를 일본에서 들여올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설렁탕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진~한 국물은 ‘배’보다는 ‘가슴’을 채웠습니다.

(조의준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joyjune.chosun.com])